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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0)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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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가

(90)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정확한 미디엄의 실험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글을 쓰는 것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미술을 파헤치는 방법 중 하나다. 작업 초반 질 들뢰즈(Gilles Deleuze), 펠릭스 가따리(Félix Guattari) 등 철학자로부터 영향 받았던 그는 이후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첫 소설과 닐 스테펜슨(Neal Stephenson)의 작품을 꼽는 그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일에 열의 넘친다. “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행하도록 압박한다.”고 말하는 파레노는 지난 2013년부터 2014년에 걸쳐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 마련된 개인전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에서 돌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1910년 발레모음곡 <페트로슈카(Petrouchka)>의 악보에 따라 전시구조를 잡기도 했다.



Exhibition view <H (N)Y P N(Y) OSIS> at Park Avenue Armory Philippe Parreno <The Crowd> 2015 (still) and <Bleachers> 2015
ⓒPhilippe Parreno Courtesy Pilar Corrias, Barbara Gladstone, Esther Schipper Photo credit Andrea Rossetti




  이렇듯 다양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영화, 비디오, 사운드, 조각, 퍼포먼스, IT 등을 넘나들며 리얼리티와 픽션을 오가는 필립 파레노. 그는 전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재정의하고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변화무쌍한 환경을 만듦으로써 전시를 하나의 유기적 대상으로 재현하는 파레노는 일련의 오브제들이 한 공간에 배열된 여타 전시와 달리 전시 자체를 미디엄으로 인식케 한다.

  맥락이 전혀 다른 작품들을 내놓는데, 사람들은 기막히게 필립 파레노의 작품을 알아본다. 그리고 영락없이 감탄한다. “그가 또 예상을 뒤엎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미술계 악동’이나 ‘돌연변이’ 정도의 별명이 붙을 만도 한데 파레노에겐 늘 아카데믹하고 우아한 수식이 붙는다. 왜일까? 이론이 탄탄해서? 집필도 하고 영화도 만드는 작가라서? 사람들은 파레노가 ‘전복시키는 사고’를 기꺼이 즐길 뿐 아니라 본의를 찾으려고까지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파레노가 지닌 제일 강력한 무기이다.




Philippe Parreno <TV Channel(detail)>, 2013 On screen: <Alien Seasons> 2002 Exhibition view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Courtesy the Artist, Pilar Corrias and Esther Schipper Photo: ⓒ Andrea Rossetti




  그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작업들을 하는지 보자. 1999년 파레노는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와 함께 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판권을 샀다. 그리고 ‘Annlee’라 이름붙인 이 캐릭터를 바탕으로 동료 작가들과 다양한 작품을 생산했다. 그들은 미디어 공간에 존재하는‘Annlee’의 움직임과 목소리에 컴퓨터로 생산된 인형만이 가지는 묘한 우아함이 있다고 여겼다. 작가적 상상력으로 낯설고 멜랑콜리한 특성이 더 도드라진 꼬마 여자 캐릭터는 종종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파레노의 팔레 드 도쿄 전시의 <Annlee>에서도 그랬다.

  티노 세갈(Tino Sehgal)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상이 끝나자 관객 앞에 한 (가상의)아이가 나타나 스스로 ‘Annlee’라고 소개한 후 관람객과 눈을 맞추고 이렇게 물은 것이다. “What do you believe, your eyes or your words?(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당신의 시각 아니면 당신의 말들?)” 아이가 내뱉는 말은 파레노의 독특한 예술관을 대변한다. 이는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빠져들 때, 우리의 정신은 얼마만큼 진짜 세계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탐닉해 온 작가가 스스로의 고민을 대중에게 던진 셈이다.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Liam Gillick <Factories in the Snow>, 2007, Disklavier piano, artificial black snow Collection of Philippe Parreno Installation <Petrouchka> Stranvinski, recorded by Mikhail Rudy on a “Disklavier” Yamaha piano, 2013 Courtesy Philippe Parreno Photo credit: ⓒAurelien Mole




  영상작품 <Marilyn>(2012)은 어떤가. 작품 속 카메라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시선을 대신하고 먼로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컴퓨터 사운드가 내레이션을 이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공간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호텔로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머물렀던 곳이다. 카메라 워킹은 먼로의 섬세한 시선을 캡처하고, 평범한 방은 마치 감옥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벨이 울리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할 때쯤 공간 한편의 책상에서 로봇이 먼로를 대신해 무언가를 적어나가고 있다. 영상이 끝나고 어두운 방 안이 환해지면서 관람객 눈앞엔 거대하게 쌓인 인공눈더미가 드러난다. 실은 먼로의 유령이었던 기계를 인지하며 눈더미를 바라보자면 오싹한 공포감이 몰려온다.




<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The Dance>, 2014, Wood, paint, speakers,
amplifiers, cables, moving wall Ø 601cm(stage), 301 x 51 x 600cm(moving wall) Courtesy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credit ⓒAndrea Rossetti




  파레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2006)는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팔레 드 도쿄 전시에서 공중에 미로처럼 떠있는 17개의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 이 작품은 2005년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와 비야레알(Villareal)과의 경기 때의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이 주인공이다. 지단이 공을 쫓는 것에 따라 관람객 또한 이 거대한 미로를 따라가야 되는 프로세스로 작품은 완성됐다. 이 영상 작품은 그가 어린 시절 가졌던 “TV 속 히어로들은 TV가 꺼졌을 때 뭘 할까?”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파레노 스타일인 이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이용하면서도 인물에 대한 깊은 연구와 수수께끼 같은 호기심을 제시한다. 

  이 세 작품을 비롯해 파레노의 획기적인 작업들이 망라됐던 팔레 드 도쿄 회고전은 그야말로 파레노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이전 20여 년 간 ‘경험적 예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관계의 미학’에 가장 잘 부합 하는 작가로 꼽혔던 그가, 보다 광범위하게 협업하며 밀도 높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많은 현대미술이 인물, 풍경, 역사의 영향이나 심리 등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파레노는 그것들을 단지 움직이는 그라운드로 여기고 마음껏 발상을 펼치고 있다. 전시장 천장은 물론 기둥과 바닥, 바깥 계단부터 티켓 데스크까지 전시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운 작가는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잔뜩 갖다 놓고 작품이 설치되는 세팅과, 관객과, 그리고 다른 (살아있거나 죽은 모든)작가들을 그곳으로 소환시켰다. 시대를 풍미했던 팝송과 배우들을 회상하듯 관람객들은 전시에서 많은 것을 상상하고 상기했다.




Film still from <The Crowd>, 2015, Runtime: 24minutes Color digital 65mm Sound mix: 5.1 Aspect ratio: 1.10 ⓒPhilippe Parreno Courtesy Pilar Corrias, Barbara Gladstone, Esther Schipper




  파레노는 1970년대 정치적으로 오픈돼 있던 프랑스 남부의 그르노블(Grenoble)에서 자랐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창조하는 것에 관심 갖고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려 노력했던 사회적 현상 덕분에 워킹클래스 출신이었던 파레노에게도 여러 문화생활의 기회가 주어졌다. 게다가 10대 때 다닌 대안적(혹은 실험적)인 학교에서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고 교류함으로써 파레노의 사고 범위는 증식됐다. 그가 15살이 되던 해 드로잉 수업에서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rester)를 처음 만나 예술 학교 진학을 마음먹었다. 사고의 얼개가 남보다 좀 더 다층적이었던 소년은 그렇게 미술로 유입됐다.

  사람들이 파레노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는 ‘전시’를 미디엄이라고 여기는 그의 아이디어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오브젝트 생산자가 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취한 액션이었다. 전시는 단지 오브젝트들의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창작의 활동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지속하고 있던 중 리암 길릭(Liam Gillick)을 만나 친구가 됐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여전히 내가 가장 관심 갖는 주제이다.”




Exhibition view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Philippe Parreno, The Writer, 2007 Courtesy Pilar Corrias Photo credit: ⓒAurelien Mole




  이야기를 변주하는데 능수능란한 파레노의 또 다른 작품 <The Boy from Mars>(2003)는 치앙 마이(Chiang Mai)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건축가 프랑소와 로체(Francois Roche)가 완성한 건축과 그 건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물소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날개가 달린 건물 앞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물소, 그리고 데빈드라 반하트(Devendra Banhart)의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작품은 파레노와 그의 친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건물은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건물이지만, 주거와 상업행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보통 건물 용도와 달리 오로지 영화를 위해 존재하고 전력을 공급한다.




<The Boy from Mars>, 2003, 10min 39sec 35mm, Transferred to HDCAM.
이미지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이 건축은 오로지 상상력과 허구를 위한 존재인 셈이다. 여기에 고화질로 촬영된 화면은 마치 움직이는 회화와 같은 효과까지 준다. 근대 명화에서 봤음직한 평화로운 목가풍경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 속에서 상상과 현실의 밤과 낮은 함께 흘러간다.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파레노가 말했다. 시간과 공간성에 집중하는 수많은 작가 중 파레노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것이다. 예술이 소통의 다른 창구라 인식하는 보편적 사고를 뒤엎는 ‘반전’ 말이다.


글=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사진=Esther Schipper 제공
2016. 4. 11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필립 파레노 프로필>
  필립 파레노는 1964년 알제리(Algeria) 출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며 필름 메이커, 글을 쓰는 작가, 현대미술 작가를 병행하고 있다. 연극 무대 같은 전시장 설치를 통해 현실을 가공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그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듯 미술관과 갤러리를 상상력과 현실이 교차하는 통로로 만든다. 그는 1990년대에 ‘전시’를 미디엄으로 이용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파레노의 전시는 일종의 대본화 된 공간으로 일련의 이벤트들이 베일을 벗으며 일어난다.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영국 런던 등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활발히 활동 중으로, 2013년 팔레 드 도쿄에서 전무후무한 전시를 열었으며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올해 9월 테이트모던 현대커미션 작가로 터바인 홀에 또 다른 스펙타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미술전문 월간 ‘퍼블릭아트’ 2016년 4월호에 실린 것으로 저작권은 ‘퍼블릭아트’에 있으며 ‘퍼블릭아트’의 허락 아래 전재(轉載)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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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6/04/06 11:02:15 Posted at : 2016/04/05 17: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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