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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2) 피오나 홀(Fiona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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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가

(92) 피오나 홀(Fiona Hall)



피오나 홀


광기, 해악, 슬픔의 지뢰밭

  식물이 곧 권력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러니까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곧 돈이나 다름없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식물과 경제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상당히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호주를 예로 들어보자. 17세기 이후 유럽의 강대국들이 앞 다투어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식민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야망 때문이었다.

  그 야망의 희생양이 된 국가가 바로 호주이다. 1770년,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 이끄는 탐험선이 시드니에 상륙하면서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탐험선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승선했는데 이중에는 귀족 출신의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Joseph Banks)도 있었다. 뱅크스는 동료들과 함께 1,400가지의 식물을 포함하여 약 3만개의 표본을 수집하였고 당시 표본으로 가져왔던 식물들이 전 세계로 퍼져 불과 200년 만에 전 세계 열대 조림지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Untitled>, 2013, from the series ‘Big Game Hunting’, Enamel on cuckoo clock
Private Collection ⓒFiona Hall


  이후 계속된 식민지 사업으로 호주의 자연환경은 오염되었고 다수의 동식물이 멸종되었으며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다. 호주의 역사는 식민지 사업의 폐단을 알려주었지만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호주의 예술가 피오나 홀은 식물이 식민지 건설과 세계 경제의 역사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견해를 피력해왔다. 그 많은 종(種)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유럽이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맥락에서 식물과 경제가 지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상관관계는 그녀의 대표작 <Leaf litter>(1999–2003)에 잘 나타나있다. 4년간 이어진 이 작품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 위에 나뭇잎을 한 장씩 붙여 표본을 만든 것으로, 각 식물의 서식지는 표본지에 해당하는 화폐의 국가와 일치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홀은 식민지, 전쟁, 환경 등 국제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주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부터 갖고 있던 욕망이었다. 

  피오나 홀은 숲 지대가 많은 시드니 근교 오틀리에서 성장했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부시워킹(관목, 가시덤불 등이 밀집한 산길을 걷는 행위로 호주의 생태 · 지형적인 특성을 말해주는 문화)을 하며 여가를 보냈다. 이 때 다양한 식물 종(種)을 접하면서 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년기에 누렸던 환경적인 특성은 훗날 자연과 인간의 문화를 파고드는 작업으로 발전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Endings are the new beg>, 2014, from the series ‘Wrong Way Time’ 2012-2015,  Oil on long-case clock on loan from the artist and Roslyn Oxley9 Gallery, Sydney Photograph: Clayton Glen ⓒFiona Hall


  한편 홀이 예술가가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과학자였던 홀의 어머니는 딸이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되길 바라면서 전시장에 자주 데려가곤 했다. 어머니와 함께 뉴사우스웨일즈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에서 보았던 기념비적인 전시 «Two Decades of American Painting»은 14살이던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홀은 이 전시를 계기로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정작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진이었다.



<Where the wind blows>(detail), 2015, Gouache on banknotes; 74 parts Installation view of Australian Pavilion, 'Venice Biennale 2015' on loan from the artist and Roslyn Oxley9 Gallery, Sydney Photograph: Christian Corte ⓒFiona Hall



  홀은 1970년대에 다큐멘터리적인 풍경사진과 식물사진으로 주목을 받으며 미술계에 입문했다. 한 때 애들레이드의 남호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 Australia, Adelaide)에서 사진학을 가르쳤으나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를 그만두었고 현재는 사진과 회화, 그리고 조각과 영상은 물론 정원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全) 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인류학적인 고찰이 뒤따르는 심오한 주제들로 작업을 확장시키며 국제무대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anuhiri(Travellers)>, 2014-2015, Collection of driftwood from Waiapu River, Aotearoa New Zealand; 103 parts Judith Neilson Collection Photograph: Christian Corte ⓒFiona Hall



  그 목소리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이어졌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전시 <Wrong Way Time>은 호주인의 관점으로 바라본 동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연사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작품 <Manuhiri(Travellers)>(2014-2015)는 신비로운 고생대 동물의 뼛조각을 모아 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와이아푸 강(Waiapu River)에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을 펼쳐 놓은 것이다. 뉴질랜드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한 와이아푸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산림지대였으나 무분별한 경제 개발로 화학물질에 오염되거나 산림지가 침식되었다. 환경파괴로 희생된 나무들의 여행, 강을 따라 내려오는 그 시적인 움직임은 자본주의 이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ll the king's men>, 2014-2015, Knitted military uniforms, wire, animal bone, horns and teeth, dice, glass, leather boxing gloves, pool ball; 20 parts Australian Pavilion 'Venice Biennale 2015'
(installation view), 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 Adelaide Photograph: Christian Corte ⓒFiona Hall



  작가는 전쟁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라고 생각했으며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강대국 간의 대립을 비판해 왔다. 그 한 예로 <All the King’s Men>(2014–2015)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인들을 재현한 것이다. 주사위로 대신한 눈동자, 일그러진 얼굴, 앙상한 몸까지, 여러 국가의 군복을 얇게 찢어 만든 사람의 형상은 하나같이 기괴하다. 전시장 중앙에 매달려 있는 이 많은 군인들은 유령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뼈만 남은 사람의 시체 같기도 하여 언캐니(uncanny, 무시무시한)한 느낌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빛, 소리, 그림자 등 비물질적인 재료들을 활용하여 전시공간을 연극적으로 연출하기도 했는데 이 효과는 ‘Big Game Hunting’(2013) 시리즈에서 극대화되었다. 벽면에 줄지어 있는 시계들에는 각각 독특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거나 슬로건이 적혀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뻐꾸기시계, 괘종시계 할 것 없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뿐만 아니라 전시를 보는 내내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 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수많은 시계에서 나는 반복적인 소리는 마치 액션 영화에서 시한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과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된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는 일상의 사물을 작품으로 변형시켜 익숙하던 것들을 낯설게 하거나 새롭게 보게 하는 흥미로운 방식을 취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사각형 테두리로 배치한 거대한 유리 캐비닛이다. 홀은 캐비닛 안을 800개가 넘는 오브제들로 채우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총 망라해 놓았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반짝이는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품들이 더없이 진귀하게 느껴진다. 마치 중요한 유물로 가득한 박물관에 온 기분이다. 캐비닛 안의 작품은 대부분 화폐, 유리병, 식물표본 등으로 그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다. 박물관은 결국 수집품을 보여주는 공간 아닌가.


Installation view of <Fiona Hall: Wrong Way Time> at the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Fiona Hall



  <Wrong Way Time>은 40년이 넘는 피오나 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면서 호주의 현대미술을 국제무대에 각인시킨 중요한 전시였다. 더욱이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호주관은 국가관들 중 최초로 구조 변경을 진행하여 파빌리온 자체도 연일 화제가 되었다.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가 심혈을 기울여 공개한 새로운 공간은 장식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피오나 홀의 작품들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는 평이다. 호주정부는 이례적으로 비엔날레의 전시를 자국(自國)에 선보이기로 하고 베니스의 명성을 캔버라로 옮겨왔다. 이에 해당 전시는 현재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에서 감상할 수 있다. 호주국립미술관은 관람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Paradisus Terrestris>(1989–90)와 <Leaf Litter>(1999–2003) 등 그녀의 대표작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Crust>(detail), 2014-2015, Bread and atlases; 32 parts on loan from the artist and Roslyn Oxley9 Gallery, Sydney ⓒFiona Hall



  피오나 홀은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에너지를 거의 소진한 상태였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들여 전시를 준비했으며 모국에서 전시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홀은 “세계는 놀랄만한 곳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세계, 그 안에서 발생하는 첨예한 문제들을 계속해서 작품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 호기심과 애정을 갖고서, 어둠과 혼란의 상태에서도 세계와 화합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


글=김남은 퍼블릭아트 호주통신원
사진=호주국립미술관 제공
2016. 6. 13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피오나 홀 프로필>
  피오나 홀은 1953년 시드니에서 태어나, 시드니의 내셔널 아트 스쿨(National Art School)에서 회화를 공부했지만 그녀의 관심 분야는 줄곧 사진이었다. 졸업 후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의 사진작가 페이 고드윈(Fay Godwin)의 조수로 일하며 사진을 배웠고, 뉴욕 로체스터의 VSW(Visual Studies Workshop)에서도 사진을 공부했다. 1981년 모국으로 돌아 온 이후 사진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애들레이드 현대미술 비엔날레(Adelaide Biennial of Contemporary Art)에서 선보인 <Paradisus Terrestris)> 연작은 그녀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식물학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의 양치식물 정원(Fern Garden)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녀는 일상의 사물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여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세계화, 소비주의, 환경문제 등 국제적인 이슈를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호주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애들레이드에 거주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미술전문 월간 ‘퍼블릭아트’ 2016년 6월호에 실린 것으로 저작권은 ‘퍼블릭아트’에 있으며 ‘퍼블릭아트’의 허락 아래 전재(轉載)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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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6/06/08 15:58:44 Posted at : 2016/06/07 12: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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